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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즈오

미즈오

미즈오

미즈오는 사가노와 아라시야마 상류에 있는 호즈쿄 협곡 북쪽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마을의 역사는 헤이안 시대(794-1185)로 거슬러 올라가며 세이와 천황(850-880)이 마지막 안식처로 선택한 곳이기도 합니다. 교통의 요지로 알려진 미즈오에는 불을 막아주는 신으로 유명한 아타고 신사가 있는 아타고산으로 이어지는 참배길이 있으며, 1582년에 유명한 쿠데타(혼노지의 변)를 일으킨 무장 아케치 미쓰히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아케치 고개가 있습니다.

이 역사적인 마을은 '유즈노사토(유자마을)'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미즈오산 유자는 크고 향이 풍부합니다. 유자는 고급 일식집 뿐만이 아니라 향긋한 유자 목욕탕이나 도리나베 라고 불리는 유자 풍미 가득한 닭고기 전골에도 쓰이는데 이것을 즐기기 위해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69년 동안 이 마을에 살아온 교토 미즈오 농산의 무라카미 가즈히코 대표님께서 미즈오의 매력을 발견하는 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무라카미 가즈히코의 이야기

JR 호즈쿄역에서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을 차로 약 15분 달리면 '유즈노사토(유자마을)' 간판이 보입니다. 가을에서 겨울까지 수확기에는 마을 곳곳에서 풍부한 열매를 맺는 유자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미즈오는 일본에서 유자재배가 시작된 곳이라고 합니다. 유자는 원래 중국이 원산지이며 언제 어떻게 미즈오로 전해졌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나조노 천황(1297~1348)의 명으로 심었다는 설도 있고, 세이와 천황(850~880)이 유자향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에도 시대(1603-1867)에는 많은 논이 있었고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이곳에 살았습니다. 무라카미 씨에 의하면 "미즈오는 에도 시대에 두 차례의 큰 불이 나서 모든 기록이 소실되어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씨가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예로부터 임업과 유자 재배가 활발해 남자들은 임업과 유자재배에 종사했고, 여자들은 아타고산을 방문하는 참배자들에게 시키미(붓순나무) 가지를 부적으로 팔았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씨의 가족도 이 산간 마을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농민입니다.
에도 시대(1603-1867)에는 많은 논이 있었고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이곳에 살았습니다. 무라카미 씨에 의하면 "미즈오는 에도 시대에 두 차례의 큰 불이 나서 모든 기록이 소실되어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씨가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예로부터 임업과 유자 재배가 활발해 남자들은 임업과 유자재배에 종사했고, 여자들은 아타고산을 방문하는 참배자들에게 시키미(붓순나무) 가지를 부적으로 팔았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씨의 가족도 이 산간 마을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농민입니다.

1952년생인 무라카미 씨가 청년기를 보낸 1960년~70년대에 이 마을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임업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사업을 이어갈 자식들은 도시에서 일하기 위해 마을을 떠나버려 많은 가정이 후계자를 잃었습니다. 무라카미 씨는 마을에서 도시로 출퇴근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60~70대인 우리 세대 마을주민 중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1971년에 취직한 후 40년 동안 매일 아침 6시 반에 집을 나서서 기차를 탔어요."
 
그 시기 미즈오 부녀회는 마을의 안정적인 수입원을 만들기 위해 방문객에게 일반가정의 유자 목욕탕과 도리나베를 제공하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도리나베: 냄비에 맑은 육수를 넣고 끓이는 닭고기 전골의 일종) “임업이 쇠퇴하고 시코쿠 지방에서도 유자재배가 시작되는 등 유자 산지가 확대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어요. 게다가 유자나무에는 가시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유자껍질에 상처가 생겨요. 출하할 수 없는 유자를 어떻게든 활용할 수 없을까 하고 시작한 것이 유자 목욕탕이었습니다. "유자 목욕과 함께 마을에서 오봉(양력 8월15일)과 설날 명절에 먹는 닭고기 전골인 도리나베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소박한 일반가정의 분위기를 경험하게 하는 아이디어는 대박이 났습니다. 교토, 오사카, 고베 등 도심과의 접근성도 좋았기 때문에 금세 인기가 났고, 성수기에는 마을의 약 15가구가 유자 목욕탕과 도리나베를 제공했습니다.    

무라카미 씨는 은퇴까지 약 40년 동안 주중에는 도심으로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가업을 도왔습니다. 그러다 정년퇴직 후 유자 사업에 힘을 쏟고 싶어서 2014년 62세의 나이로 농사조합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무라키미 씨는 적극적인 성격과 행동력으로 판로를 넓히고, 유자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 전역에 거래처가 생겨 2019년에는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후계자가 없었는데 둘째 아들이 이어준다고 하니 앞으로는 제가 건강할 때 어떻게든 사업을 궤도에 올리고 싶어요."
 
무라카미 가즈히코 씨가 '유자마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안내해주셨습니다.
 

아타고산 참배길

무라카미 씨의 집에서 유자밭으로 가던 중 무라카미 씨는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는 산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 산이 아타고산이에요. 경치가 멋지죠? 저는 이 풍경을 사랑해요."
아타고산은 교토시 북서부에 위치한 산으로 오래 전부터 교토 사람들이 부엌의 신으로 숭배해온 아타고 신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 마을은 아타고산의 서쪽 산기슭에 위치하며 참배길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타고산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 순례자들은 매달 아타고산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잎사귀가 30장 달린 시키미를 사서 날마다 부엌 난로에 잎사귀를 던져 불에 태워 화재 예방과 안전을 기원했습니다. (시키미:  무성하게 자라는 붓순나무의 일종으로 전통적으로 제물로 사용됨) 미즈오의 마을 여성들은 참배자들에게 시키미 가지를 팔았습니다.

다양한 길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소

자가용차가 보급되기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약 1미터 폭의 좁은 산길을 도보나 수레를 끌고 역으로 갔습니다. 무라카미 씨는 “우리 어머니도 옛날 유자를 장터에서 팔기 위해 역까지 걸어가시곤 했어요. 역에서 증기기관차를 타고 시장으로 가셨지요"라고 회상합니다. 이곳은 아타고산 동쪽 기요타키에서 사람들이 쌀을 사러 왔던 '쌀을 사는 길'이란 뜻의 '고메카이미치' 등 다양한 길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길 중 일부는 보수공사를 거쳐 등산객과 자전거 이용자가 자연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유자재배의 과거와 현재

무라카미 씨는 정년퇴직 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유자밭의 경작과 확장을 위해 버려진 농지와 산지를 매입했습니다. 무라카미 씨의 유자 재배방법은 잘 고안된 것입니다. 그는 “이 주변의 유자나무는 높이 자라서 예전에는 13단 사다리를 이용해서 열매를 땄어요. 저는 수확하기 쉽도록 나무를 전정해서 높이를 낮췄어요”라고 말합니다. 또한 과수원의 땅을 덮고 있는 들묵새라고 불리는 식물이 씨앗의 무게로 쓰러져 시들면 천연 비료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무라카미 씨의 밭에서 자라는 유자나무는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며 잎도 파릇파릇하고 열매도 크게 자랍니다.
무라카미 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숲의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사슴과 멧돼지에 의한 농업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경작을 포기한 버려진 밭에서는 동물들이 밑풀과 나무 껍질을 모두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라카미 씨의 밭은 무성한 밑풀을 유지하고 있어 그가 얼마나 정성껏 밭을 관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태풍과 폭설 등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한때는 잇따른 재해로 생산량이 절반 이하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전성기의 수확량까지 거의 회복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유자재배도 회사 경영도 순조로워 보이지만 한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미즈오의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우리 60대 주민이 최연소입니다. 도리나베와 유자 목욕탕을 제공하는 가정도 몇 년 동안 절반으로 줄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일본 산간지역의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미즈오도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훌륭해 보이는 일본 전통가옥이나 주렁주렁 열매 맺은 유자밭의 풍경 가운데, 빈집과 버려진 경작지도 있다고 합니다. 또 일손이 부족해 신사의 일이나 연중행사 등 공동체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무라카미 씨의 간절한 바람은 유자 생산을 안정적으로 늘림으로써 향후 고용을 늘리고, 마을에서 유자재배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유자마을'의 미래

무라카미 씨가 태어난 지 70년 만에 강변의 논과 매실밭이 삼나무 숲이 되고, 125년 된 초등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마을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인구감소뿐 아니라 야생동물에 의한 농업 피해,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냉지인 미즈오에서 레몬 재배는 어렵다고 알려졌으나 교토부 전체 규모로 진행 중인 레몬 재배 프로젝트인 'Kyo Lemon Project'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 속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씨가 어릴 때 아마고 (민물고기)와 장어를 잡던 맑은 시냇물과 수확 전 유자밭의 눈부신 황록색은 변함이 없습니다.

변화무쌍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이 마을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무라카미 가즈히코 씨의 눈으로 본 미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