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트를 사용하면 쿠키 사용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참조하십시오개인 정보 정책자세한 내용은.이 사이트는 기계 번역을 사용하므로 내용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번역된 내용은 원본 영어 페이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1. 불교 조각가가 끌린 가운 : 미야모토 가큐

관광 & 체험

예술_공예

불사(佛師)가 깎는 옷깃 : 미야모토 가큐

관광 & 체험

예술_공예

불사(佛師)가 깎는 옷깃 : 미야모토 가큐

콘텐츠 파트너

KYOTO CRAFTS MAGAZINE은 현지 공예품 및 관련 종사자의 라이프 스타일, 문화 및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관찰, 보고 및 보관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콘텐츠 파트너

KYOTO CRAFTS MAGAZINE은 현지 공예품 및 관련 종사자의 라이프 스타일, 문화 및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관찰, 보고 및 보관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불상의 조형은 '기키'(의궤)라고 불리는 규칙에 의해 엄밀하게 정해져 있다. 표정이나 손가락 모양, 서는 방법 하나에 이르는 모든 것이 불교 사상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불상을 만드는 장인인 불사(佛師)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고 엄숙하게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
예외적으로, 불상이 입은 의복은 의궤에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정해진 룰 안에서 작업을 하는 불사가 자신의 창의력을 담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분이다. 발밑을 향해 흐르는 듯한 옷의 질감이나 겹겹이 이어진 천의 주름에는 정답이 없다.불사는 왼손에 끌을, 오른손에 망치를 쥐고 재목을 조각해 나아가면서, 실제의 의복과 같이, 그래도 엄숙함을 잃지 않도록 시행 착오를 거듭한다. 장엄과 리얼리티 사이에서 불사는 자신이 마음에 그리는 부처를 조각해 낸다.
 
미야모토 가큐

불사. 1981년 교토에서 출생.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예술전문대, 전문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뒤 교토에서 불사 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9 년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독립하여 자신의 스튜디오인 '미야모토 공예'를 열어 불상을 조각하고 수복 작업 또한 하고 있다.

– 불사(佛師)의 의의

불사, 미야모토 가큐씨는 공방에 놓여진 작업 도중의 불상을 손에 들어 보여 주었다.
"이건 화재로 시커멓게 탄 나무 조각이었거든요."
“어느 절의 단가 스님이 화재를 당해 그분의 문병 선물로 드리려고 주지스님이 부탁하셨거든요. 완전히 타버린 건물에서 간신히 건진 느티나무의 대들보 표면을 끌로 깎아내고 나서야 부처님(석가여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은 지 100년이 넘는 가옥에 사용되었던 느티나무 재목이니 나이는 200살이 넘었을까? 화염에 싸여 표면은 거의 탄화되어 있었지만, 신중하게, 조금씩 깎아냈더니 싱싱한 나무의 표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5년까지 약 9년간의 수행을 끝내고 스승으로부터 독립한 미야모토씨. 이것이, 불사로서 받은 첫 불상 제작 의뢰였다.
“미야모토 공예로 시작해 처음 1년간은 위패 등을 조각하는 일을 중심으로 해왔습니다. 물론 불사이기 때문에 불상을 조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불사 일은 인연이 닿아야 할 수 있는 일이므로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불탄 목재에서 불상을 조각하는 경우는 꽤 드문 경우지만, 독립해서 처음 받은 불상의 의뢰가 주지스님의 마음이 담긴 중요한 일이라서 정말 좋았어요. 수행이 끝나고 막 독립했을 때는 불상을 만드는 일의 의미를 계속 생각하다가 '나는 무엇을 위해 불상을 새기는가'라고 계속 스스로에게 묻곤 하던 대답을 이 불상을 깎으며 찾을 수 있을 듯 한 기분이 듭니다."
미야모토씨의 손에 안겨있는 불상. 손놀림 한 번 한 번에 정성을 담아 깎아내어 모양을 만들어나간다.

– 패션과 불상

본명 미야모토 다카유키. 교토시 남부의 후시미구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어떤 길을 지나 불사, 미야모토 가큐가 되었을까.
줄곧 패션을 좋아했다. 중학교의 졸업 문집에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라고 적은 소년 미야모토는, 현지의 고등학교를 졸업 후, 예술 단기 대학의 패션 디자인과에 진학. 그곳에서 예술로서의 패션 표현을 접하고 조형미를 추구한 디자인에 심취한다. 졸업 후에는 도쿄의 디자인 전문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해, 패션 디자인의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실용성보다는 조형물로서 아름다운 옷 조형물을 좋아했어요. 당시 유럽의 오트쿠튀르가 추구했던 화려한 패션을 동경하며 나름대로의 표현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처럼 되고 싶었어요. 전문대에서 2년간, 전문학교에서 3년간 패션을 공부했지만, 후반에는 미싱보다 디자인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 재미있어졌습니다. 결국 전문학교를 휴학하고 아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패션 디자인화로부터 출발한 미야모토씨의 작품은 추상화까지 표현의 범위를 넓혀 전람회에의 출품 등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게 된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와 작품 제작에 쫓기는 도쿄의 삶은 24세의 미야모토씨를 조금씩 피폐하게 만들어 갔다.
“지쳐버린 바람에 태어나고 자란 교토로 거점을 옮기기로 했어요. 디자인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 작품 제작도 계속하기로 했는데 조금 안정이 됐을 때 스승님을 만났죠."
 
불사의 공방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불사 일을 하는 친구가 일손을 구하고 있으니까'라며 형이 데려간 곳에는 작업 중인 7척 길이(약 2.1m)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었다. 작업 막판의 난관인 채색 작업의 도움으로 형이 스승에게 소개해 준 것이다. 미야모토씨는 그때까지 불상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붓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것은 기뻤다. 그렇게 해서 미야모토씨의 이중 생활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그래픽 디자인을, 밤에는 붓을 들고 불상을 마주하는 나날이 약 반 년 동안 계속됐다.
끌과 대패.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함에 따라 늘어가는 도구. 도구 손질만 해도 꽤 품이 든다.
“그때는 밤낮으로 일하는 시간축이 너무 달라 미칠 것 같았어요. 한 쪽은 단기간에 소비되는 그래픽 디자인, 다른 한 쪽은 몇 100년 후를 내다보는 제조. 불상 일은 즐겁고 심오해요. 계속 일하니까 몸은 피곤할텐데 매일밤이 기다려지고. 그쯤 되면 더는 제 마음을 막을 수 없는 거죠."
그토록 빠져있었던 패션도 회화도, 불상의 재미를 알아버린 미야모토씨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일, 앞으로의 일 등 여러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승에게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이미 불상의 매력에 홀렸었나 봐요."
스승은 한참을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스물 다섯 살의 견습생. 장인으로서는 너무 늦은 시작이었다.
공방 안은 조각을 하는 장인의 작업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고 반듯하다.

– 분에 넘치는 수행

불사의 수행 수업 기간은 엄격하고 길다. 조각뿐 아니라 채색이나 옻칠, 박압 등 불상 제작에 필요한 작업들을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불사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리·수복에는, 새 불상을 만드는 데에는 포함되지 않는 기술도 필요하게 된다. 10대에 이 세계에 뛰어드는 장인이 대부분인 것도 장기간에 걸친 수업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미야모토씨가 제자로 들어간 25세라고 하는 연령은, 일반적으로는 어엿한 불사로서 독립할 무렵이다.
“제자로 들어갔다고 해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한심한 기분이 들죠.”
조각법은커녕 조각칼 잡는 법조차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초조하지만, 그래도 스승의 일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런 상태인데도 스승님께 급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 답답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스승님께 면목이 없다'는 생각만 들어요. 아는 게 없지만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늘리려고 새벽에 열심히 연습도 했습니다. 오늘은 불상의 손만, 오늘은 무늬만, 하고 낮에 본 스승의 작업을 떠올려보면서요."
스승에게 있어서 미야모토씨는 첫 제자였다. 스승은 옛날식의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는 세계에서 기술을 익힌 불사였다. 그러나, 미야모토씨에게는 "일은 전부 보여 주고, 뭐든지 대답해 주겠다. 그러니까 빨리 실력을 키워라."며 말 그대로 모든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제 나이를 생각해 주신 것 같아요. 언젠가는 불사로 독립하려면 기술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배워야 빨리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수업은 너무 분에 넘치는 호강이죠. 스승님과 마주앉아 스승님이 깎으신 것을 건네받아 제가 이어서 조금 깎은 다음에 그것을 제 앞에서 다시 고쳐주셨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수행 기간을 보낸 불사는 없지 않을까. 9년 만에 어떻게든 모양새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스승님의 마음 덕분입니다."
첫 제자였기 때문에 다행히도, 미야모토씨는 불사가 다루는 온갖 일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스승에게서 배운 기술을 후배에게 다시 가르침으로써 반추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2015년 4월, 9년간의 수행 기간을 거쳐 미야모토씨는 스승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수복을 기다리는 불상 부분 조각들. 세척 공정을 마치고 해체된 상태로 건조시키고 있다. 조각 하나하나가 시대를 넘어온 표본이다.

– 고집을 꺾다(我休)

독립할 즈음하여 불사호를 '가큐(我休)'라 하였다. '스스로를 쉬게 한다'는 것은 고집을 꺾는다는 의미가 있다. 콧대가 세서 타협을 잘 하지 않고, 때로는 스승의 말에조차 반박해 버리곤 하는 자기 자신을 경계하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센노 리큐(역사적인 차 장인)는 명예도 이익도 추구하지 않고 산다는 신조에서 '명리공휴(名利共休)'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서 호를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사란, 얼마나 자신의 기분을 억제하고 일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저는 아무래도 제 고집이 먼저 나와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가르침을 떠올리라고 이 호로 했습니다."
 
공방 겸 주거 공간으로는, 마츠오 타이샤 신사에 가까운 조용한 주택가를 선택했다.
“여긴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일년 내내 습도가 안정돼 있어요. 목재를 관리하는 일은 불사의 중요한 일이죠. 교토 시내에서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다가 겨우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저는 수행 수업을 받던 시절부터 줄곧 생활과 일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사로 일하기 좋고 가족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은 독립해서 가장 먼저 해햐 하는 큰 일이었습니다.”
미야모토 공예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은 그 정연함. 작업대에 놓여진 도구류도 없었고 바닥에는 부스러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도구나 재료가 계속 나와 있는 것이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틈만 나면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분들은 진짜 여기서 일하냐며 많이들 놀라시죠. 정리정돈은 장인에게 중요한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하는 건 제 성격인 것 같아요."

– 자기만의 옷깃 표현

독립 이후 미야모토 씨는 불상을 만들 때의 자신만의 표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배운 패션 조형미가 불상 표현과 겹치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이 입는 옷의 늘어진 정도나 주름, 몸에 따른 드레이프감 같은 표현에 패션 디자인의 경험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런 장엄함을 연출하는 요소로서 생동감 있게 옷자락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불상에는 '의궤'라고 불리는 규칙이 있다. 표정이나 손가락 모양, 서는 방법 하나에 이르는 모든 것이 불교 사상을 구현하고 옛 기본형을 보존하여 전하기 위한 규칙이다. 예외적으로 옷에 대해서는 거의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불사가 스스로의 창의력을 표현할 여지가 있다. 실제의 의복과 같이, 그래도 엄숙함을 잃지 않도록. 장엄과 리얼리티의 사이에서, 미야모토씨는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는 부처를 조각하려 하고 있다.
“패션 디자인, 회화, 그래픽스 디자인과 아무 접점 없는 일만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어떤 경험이라도 불상으로 살리고 활용해야죠. 그게 저다움인 것 같아서요."
다이고지 삼보원 본존, 미륵보살좌상. 가이케이의 작품

– 현대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불사(佛師)의 일

“다이고사 삼보원 본존, 미륵보살좌상.”
미야모토씨에게 이상적인 불상을 묻자, 곧바로 이 이름을 답했다.
“이 불상은 수행 수업 시절부터 동경해 마지않았던 불상입니다. 쉬는 날에는 곧잘 망원경을 가지고 다이고지에 가곤 했습니다. 가이케이씨(가마쿠라 시대의 불사)가 만든 균일함, 약동감, 옷자락의 표현. 나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완벽한 이상적인 불상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미야모토 씨는 닳아서 너덜너덜해진 도록을 보여 주었다.
“좌우 대칭인 이목구비 배치와 곧은 콧날, 가이케이 불상의 그런 완벽한 대칭이야말로 불상의 장엄함을 낳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믿고 저 역시 이상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뒤집히는 일이 있었어요.”
그 사건이란, 수행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관람한 박물관의 특별전. 오랫동안 동경했던 미륵보살이 출전되는 것을 알고, 기뻐하며 들뜬 미야모토씨가 본 것은, 그때까지 몰랐던 조형의 사소한 왜곡들이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미륵보살은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칭적인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미세한 오차일 수 있지만 저에겐 큰 차이였죠. 다이고사에서 멀찌감치 보았을 때나 도록에서는 완전 균등했는데. 서너 시간 내내 미륵불 앞에 서서 밑에서 들여다보거나 한쪽 눈으로 보았지만 어떻게 봐도 좌우대칭이 아니었어요. 그동안 완벽한 대칭이야말로 불상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며 기량을 닦고 있었는데,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 거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그 후 1년간, 미야모토씨는 불상을 깎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독립을 거쳐 겨우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 화재로 불에 탄 목재를 사용한 불상 제작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미륵불의 좌우 비대칭에 있어서는 제 이상적인 불상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너무 부풀어 있었던 것도 같아요. 어쨌든 진짜는 상상을 훨씬 넘고, 말로 할 수 없는 거룩함이 있었습니다. 조형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차원의 압도적인 존재감. 어떻게 하면 그런 부처를 새길 수 있을까, 그것이 제 숙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작업하는 곁에는 언제나 다이고지 절의 미륵보살좌상 사진이 놓여 있다.
“가이케이씨도 그 당시에는 전위적인 아방가르드였을 것이다, 규칙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만드는 창의성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제 자신의 불상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17년 4월, 화재로 타다 남은 목재를 가지고 조각해낸 한 자 길이(약 33cm)의 석가여래입상이 완성됐다. 의뢰로부터 약 1년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불상 봉헌식을 맞이했다. 미야모토 씨가 붙인 '고엔(광염)'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업화를 이겨낸 이 느티나무가 부처가 되어 오래도록 집을 지켜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미야모토 가큐로서 만든 첫 불상이, 귀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손을 모아 우러르는 대상을 만드는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배운 것 같습니다. 장인으로서 더없이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미야모토 코게이

웹 사이트 : gakyu.jp/
인스 타 그램: instagram.com/gakyu01/

제휴 사이트에서 더 많은 기사 읽기

KYOTO CRAFTS MAGAZINE은 현지 공예품 및 관련 종사자의 라이프 스타일, 문화 및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관찰, 보고 및 보관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